발 디딜 틈이라도 좀 만들어주고 초대하는게 어때?
피자에 디저트까지 엄청 맛있게 먹어놓고 꼭 잔소리야.
저녁은 맛있었어! 일등신랑감이네, 쫑?
그럼, 청소 좀 해주고 가라, 어? 너 치우는거 잘하잖아
어휴, 이 청소병신! 진짜, 어떤 여자랑 결혼할지..
..야, 그만 웃지?
..너무..부럽잖아, 그 여자

이 내용을 구질구질한 대사 없이 말끔하고 깔끔하게 소설로 써보고 싶다.
막 미친듯이 웃다가 얼굴 감싸면서 눈물 툭 떨구는 김기범으로
 
+ 2013.6.6 20:28

종현이 만든 고르곤졸라 피자는 썩 괜찮았다. 꿀이 없어서 설탕에 치즈가 잔뜩 올라간 피자를 폭폭 찍어 먹었지만, 기범에게는 항상 그의 SNS에서나 보던 그의 음식을 직접 맛 보았다는 것이 퍽 감동적이었다. 사이 좋게 조각조각 나누어 먹고, 샐러드도 반 이상 비웠을 때 그제야 배를 두드리며 주위를 둘러보자 손님이 온다고 급하게 치워 놓은 티가 역력한 옷가지들과 택배 박스들이 베란다 끝에 비쳤다. 김종현답다. 기범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고, 그런 기범의 시선이 지저분한 옷가지에 꽂혀 있는 것을 본 종현이 멋적은 듯이 웃으며 아, 난 정말 청소는 못하겠어-하고 스스로 고해성사의 시간을 가졌다.

"아무리 그래도 그저께부터 내가 온다고 했는데 저건 좀 치워놨어도 되지 않았어?"

놀리며 묻자 방금까지 쑥스러워했던 시선은 금세 사라지고 입가에 웃음을 빙글빙글 담은 채로 먹여 놓으니 또 힘나서 잔소리를 한다며 종현이 핀잔을 준다. 그래, 피자는 맛있었다. 샐러드도 맛있었고. 요리도 똑똑한 사람들이 잘 한다고 하던데 여러모로 김종현은 정말 동그란 사과뒤통수처럼 똘똘한 사람인 것 같다.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에도 그의 좋은 점을 하나씩 더 발견해 반하고 마는 자신이 우스워서, 기범은 또 픽 웃었다. 

"야, 비웃기냐? 그래도 피자 진짜 파는 것 같지? 나 일등신랑감이지, 어?"

- 신랑. 그 두 음절이 기범의 귓가에 툭 떨어진다. 김종현의 입에서 나오는 결혼, 아이, 아내 따위의 단어는 몇 번을 들어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아니, 적응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적응하고 싶지 않다. 그래, 김종현 너는 과연 어떤 여자와 결혼을 할까. 어떤 여자의 살을 안고, 어떤 여자와 입을 맞추고, 아침을 맞고, 이렇게 식사를 하고. 문득 울렁이는 감정이 명치 끝에서 차올랐다. 밥도 잘 먹고, 이렇게 집에까지 초대되어 왔는데 별거 아닌 한 마디가 또 기범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머저리 같이 이 좋은 분위기에서 왈칵 울어버릴 수도 없잖아.

"피, 요리만 잘하면 뭐하냐? 이렇게 지저분하면 아무도 안 데려가!"
"너 같은 여자 만나야지. 청소왕! 아, 근데 옷장에 각 세워놓는 결벽증까지는 사양."

손을 잘레잘레 흔들며 꽤 미운 표정을 짓는 종현에게, 평소 같았으면 눈을 잔뜩 치켜뜨고 같이 몰아 붙였겠지만 기범은 도무지 거기까지 해낼 자신이 없다. 당당하게, 아무렇지 않게 하기에는, 둘의 시간이 좋았고, 피자가 너무 맛있었고, 김종현의 웃는 모습이 좋았다. 

"이 청소병신, 정말- 어떤 여자가 데려갈지..."

기범은 머리가 아픈 척, 이마를 누르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김종현 보다 한마디는 더 긴 하얀 손가락이 기범의 얼굴을 폭 감싸 떨리는 턱 끝조차 보이지 않았다. 기범은 상처 받았다. 스스로 뱉은 '어떤 여자'라는 네 글자로 스스로 난도질 해버렸다. 입 밖으로 내던진 말인데 메아리처럼 돌아와 가슴에 비수로 꽂혔다. 어떤 여자가 데려갈지. 어떤, 여자가 데려갈지. 어떤 여자가, 데려갈지... 김종현이 청소병신이라는 단어가 참신하다며 실없이 웃고 있었지만 기범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어떤 여자, 김종현 너를 데려갈 수 있는 그 여자가-.

... 너무, 부럽잖아. 

얼굴을 감싼 손가락에 툭하고 물기가 터졌다. 보이지 못하게, 볼 수가 없게 눈을 꼭꼭 눌렀다. 광대가 뜨거워질 만큼 세게. 눈가가 시큰할 만큼 강하게. 김종현은 몰라도 된다. 혼자 좋아하고 혼자 우는 것은, 이제 익숙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