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라, 나를.

fix 2013. 10. 22. 02:15
짝사랑 이야기 쓰고 싶다.
근데 연달아 짝사랑 타령이라 좀 그렇다.

별 보는 동호회인거야.
다 같이 별보고 있다가 텐트에서 툭 잠드는데
새벽이 되서 추워지니까 자는 네가 걱정이 되서
자고 있는 손이며 볼이며 제 손으로 녹여주고
다 벗고 던져놓은 양말 손수 신겨두고
낑낑걸리며 취한 몸에 코트입혀놓는,
병신같지만 귀여운 짝사랑.
 

김약국

fix 2013. 7. 26. 18:09

지묘동에는 김약국이 없다. 하지만 핫핑크 간판의 약국은 있다. 그리고 아줌마고 아가씨고 할 것 없이 김약사를 훔쳐보는 약국 앞 벤치도 저기 앞에 있다. 저 약국 약사아저씨로 말할 것 같으면, 머리가 너무 지끈 거리는 날 미간에 주름 팍 주고 들어가 "두통약 두통만 주세요" 부탁했던 나를 보고 빵 터진 아저씨다. 두통약 두통 좋은데요? 하면서. 아, 약사형... 하지만 유쾌해서 웃고 나왔다. 문득 김기범의 하얀 가운도 멋있을 것 같다고 생각을 했다. 긴 손가락에 조금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파리하고 하얀 피부, 하얀 가운. (하악하악) 하지만 환자분들에게는 따뜻한 (♥) 김약사쨔응..

묘한 것을 안다는 뜻의 지묘(智妙)마을 입구에는 김약국 이라는 평범한 이름의 약국이 하나 있다. 핫핑크의 눈에 띄는 간판에 [김약국] 심플하게 세 글자만 박아 놓고 영업을 시작한 지는 거의 3년이 다 되었다. 처음 이 동네에 생겼을 때 보송보송하던 김약사님은 조금 나이가 들어 제법 성숙하고 의젓한 느낌의 미청년이 되어 있었고, 그 약사님이 약국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어디선가 나타나 홀연히 약사님을 데리고 홀홀 가버리는 또 하나의 쾌청년은 지묘동 여자들의 은밀한 눈요깃거리가 되어 주고 있다. 약국이 문을 닫는 6시 정도가 되면 약국 앞 큰 느티나무 아래에 있는 벤치에 여중생이고 여고생들이고 아줌마들이고 할 것 없이 삼삼오오 모여 다들 수다를 떠는 척 김약국에 잔뜩 신경을 쓰고 있다. 동네에 나오는 아줌마들이 뭘 그렇게 입술에 색까지 칠하고 나오는지, 옆에서 장기를 두고 있는 할아버지들은 그 시간만 되면 모여드는 여자들의 등쌀에 못 이겨 집으로 쫓기듯 들어 갔다. 
아, 오늘도 왔다. 김약국 셔터맨 쾌청년. 그리고 주머니에 손을 꽂고 툴툴거리며 나오는 미청년. 여중생, 여고생들은 대놓고 사르르 녹아가는 눈빛으로 둘을 보고 있고 아줌마들은 제법 강단 있게 ‘약사님, 가세요?’하며 말을 걸기도 했다. 그러면 꺼진 간판에도 불이 다시 켜진 것처럼 반짝반짝하게 ‘네, 퇴근합니다. 건강하세요!’하고 인사를 해주는 것이 이 약사님의 저녁 인사이자 선물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디저트. 약사님 옆에 서있는 청년이 꾸벅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해주면 또 한번 연령을 불문하고 여자들의 가슴 속에 검은 하트가 솟는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김약국 입니다.
2012.05.22 <김약국> 프롤로그  

그대만 나의 봄이다

fix 2013. 7. 21. 17:45
예전에는 현대물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리얼리티나 현대물보다는 고전물이 좋아졌다. 고전물도 너무 멀리간 것 말고 그냥 적당히 간걸로 일제시대 배경이나 한 70, 80년대도 좋다. 그러고보니 학생운동 시절에 관련된 소설은 잘 보지 못한 것 같은데 그쪽으로도 한번 보고 싶다. 대학 조차 안전한 곳이 아니던 때에 사찰 같은데 사는 고아 김기범과 학생 운동 하다가 숨어 들어온 김종현 같은 소재로. 고대 학생운동 최선봉에 서있는 김종현이 대업을 위해 경찰들을 피해 지리산 산 속에 있는 사찰로 들어갔는데 고아인 김기범이 사찰에서 살고 있는거임. 근데 김기범 아버지도 전쟁범 이런거에 희생자라서 속세라면 질겁을 하고 얽히지 않으려고 하는데 김종현은 점점 좋아지고... 이런거 써보고 싶은데 지식 부족으로 망.

여튼 그런거 막 망상하고 있자니 예전에 일제시대 배경으로 써놨던 소설이 생각나서 괜히 한번 뒤적여 봤다. 2년전에 쓴 소설이고 제목은 그대만 나의 봄이다. 반응은 별로 안 좋았는데 난 이런 소재 좋아하니까 쓸때 감정이입해서 열심히 썼던 소설이다. 해피엔딩 인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도 그렇고 아련하게 끝냈던 것도 순전한 내취향. 물론 이런 종류의 소설이 언제나 그러하듯이 클리셰는 쩔지만 클래식은 영원하다고 다 돌고 도는게 아니겠냐며. 

시대물이지만 딱히 김기범을 여리여리하게 쓴 것도 아니었고 김종현 대신 독박 뒤집어 쓰고 사는 설정도 좋다. 김기범은 사랑받는 것도 좋지만 아련 터지면 더더욱 매력이 넘치는 캐릭터 이므로 ... 다들 김종현 장가 보낼때 김기범 장가 보냈던 패기. 내가 예전에 썼던 걸 읽어보면 뭔가 손가락에 접신을 해서 위에서 망상한 시대물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주말에 잠시 접해 보았지만 오글거리는 바탕체의 습격을 받고 조용히 민망하게 웃으며 뒤로가기를 눌렀다고 한다. 망상은 가능하오나 긴 글이 써지지 않습니다. 애들 이미지도 내 속에서 너무 치우치게 된 것도 그렇고 팬픽은 이제 못 쓰겠다 싶었는데 레알 손가락이 굳었어요 (!) 사실 소설 쓰는 것만큼 애정이 넘실거리는 팬질도 없는데 말입니다.

“네가 종현이로구나.” 군데군데 까슬하게 껍질이 일어난 투박한 손이 아이의 작은 볼을 만졌다. 추위에 코 끝도 볼도 빨갛게 물든 통통한 볼은 훌쩍- 코를 마시는 아이와는 다르게 따뜻하다. 눈매가 제 아비를 꼭 닮았다. 동그랗고 끝이 쪽 째진 눈을 가지고 어릴 적에는 놀리기도 많이 놀렸다. 여우새끼 마냥 찢어진 눈이라고. 누구세요? 라고 묻는 아이의 입술은 말을 할 때마다 입술 끝이 말려 올랐다. 이것도 제 아비를 꼭 닮아 보는 것만으로도 눈가가 시큰했다. 이름이 김종현이지? 재차 묻자 고개를 크게 끄덕이는 아이에게서 또 제 아비가 보인다.

 2011.11.07 그대만 나의 봄이다.